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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글> 정주희의 ‘Beautiful -awful’ 류병학_미술평론가

정주희의 ‘Beautiful - awful’
미술평론가 류병학


“전시타이틀 『뷰티플-어풀(beautiful-awful)』은 아름다움과 끔찍함이 공존하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개인의 삶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의 유의미함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죠.”

- 정주희 작가 & 류병학의 인터뷰 중에서

부산 다대포에 위치한 홍티아트센터에서 열린 정주희 개인전 『아름다운 - 끔찍한(Beautiful – awful)』에는 3점의 작품들만 전시되어 있다. 두 점은 영상작품이고, 나머지 한 점은 회화이다. 전시된 작품이 3점이라고 하지만 각 작품들의 스케일이 장난 아니다. 필자는 지면의 한계로 인해 그녀의 전작들에 관해서는 이곳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말린 꽃과 과일 껍질 등을 넣어 만든 방향제 ‘포푸리’를 크게 확대하여 그린 정주희의 ‘포푸리(Potppuri)’ 시리즈나 뉴스를 스크랩하여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한 ‘고독한 군중(Lonely Crowd)’ 시리즈 그리고 ‘관점(perspective)’ 시리즈 또한 여행가방에 뒤엉켜 있는 소지품을 그려낸 ‘팩드 에이지(Packed age)’ 시리즈 말이다. 

물론 관객이 정주희의 전작들을 본다면 그녀의 작품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홍티아트센터에 전시된 <읽기연습> 시리즈 2점은 전작들을 보아야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읽기연습> 시리즈는 작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해 몸의 극한을 시험하는 영상작품이다. 따라서 관객이 그녀의 영상작품들을 직접 보아야만 이해 가능할 것이다. 

정주희는 <읽기연습1>(2015)에서 두 손으로 종이를 잡고 텍스트를 읽으면서 머리에 이고 있는 책들을 떨어트리지 않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녀는 <읽기연습2>(2016)에서 두 손으로 종이를 잡고 텍스트를 읽으면서 멍이 들고 피가 날 정도로 회초리를 맞는다. 그녀는 <읽기연습3>(2017)에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철봉에 매달리기를 반복하여 시도한다. 술도 잘 못 마시는 그녀는 <읽기연습4>(2017)에서 매1분마다 소주를 원샷(one shot)해 4병을 마시고 작업을 마친 후 기절해 버린다. 

정주희는 자신의 신체를 버티기 힘들 정도로 ‘학대’한다. 관객은 자신의 신체를 괴롭히는 작가의 행위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 그녀의 <읽기연습> 시리즈는 관객에게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게 한다.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심리나 감정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네가 하려는 이야기는 감정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개인이 느끼는 쇼크가 다르고 그게 저한텐 굉장히 중요해요. 개인이 받는 쇼크는 범주가 될 수 없잖아요.”

지난 5월 23일 필자는 부산 다대포를 찾았다. 홍티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정주희 개인전 『뷰티플-어풀(beautiful-awful)』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정주희의 개인전은 1층 전시실과 공동작업장 두 곳에서 열리고 있었다. 필자는 일단 첫 번째 전시공간인 공동작업장으로 향했다. 

정주희는 공동작업장에 단 한 점의 영상작품만 상영되도록 했다. 그 영상작품은 결혼식장에서 결혼식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정주희는 이 작품을 <읽기연습5>로 작명했다. 그런데 정주희의 <읽기연습5>에 등장한 주례사가 어디서 봄직한 인물이다. 그렇다! 신부가 다름아닌 정주희 작가였다. 

어떻게 신부가 주례사의 자리에서 주례를 하고 있는 것일까? 혹 작가가 작품을 위해 결혼식장에서 신부 드레스를 입고 주례를 한 것은 아닐까? 아니다! 정주희의 <읽기연습5>는 연출된 것이 아니라 레알이다. 그것은 그녀의 실재 결혼식을 촬영한 것이다. 

정주희와 예비남편은 양가 부모가 원하는 결혼식을 하지만 기존 권위적인 결혼식에 순종하기보다 차라리 저항하는 결혼식을 치르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양가 부모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녀의 <읽기연습 5>는 양가 부모와 하객들이 결혼식장이 아닌 피로연 장소로 자리를 옮겼을 때 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양가 부모는 그녀의 <읽기연습 5>를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셨단다. 정주희의 <읽기연습 5>에서 신부가 읽는 주례사는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수집한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남편은 어떠해야 하고, 부인은 어떠해야 한다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압박 내용 말이다. 

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홍티아트센터의 두 번째 전시공간인 1층 전시실로 자리를 옮겼다. 홍티아트센터를 방문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1층 전시실은 거대하다. 전시공간이 열라 넓고 천고도 졸라 높다. 따라서 작가가 개인전 하기에 쉽지 않은 전시공간이다. 

거대한 1층 전시실에는 일명 ‘구름다리’가 하나 설치되어 있다. ‘구름다리’는 건물 2층에 있는 출입문을 통해 들어가 아래 전시실을 조망할 수 있는 독특한 곳이다. 오!!! 필자는 홍티아트센터 1층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했다. 왜냐하면 거대한 전시공간에 가로 8미터에 세로 2미터의 거대한 그림 한 점만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고요? 정주희는 기다란 ‘구름다리’를 이용해 거대한 그림 한 점을 마치 거대한 빨래처럼 널어놓았다고 말이다. 그 거대한 그림에는 캔버스 틀도 없다. 거대한 전시공간에 거대한 그림 한 점! 얼마나 당당하고 멋찐 연출인가. 단 한 점의 그림은 거대한 공간에 먹히지 않고 서로 팽팽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배짱 좋다! 그런데 정주희의 배짱은 거대한 캔버스 천에 표현된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왜냐하면 기다란 천에 표현된 것은 붓으로 그려진 것이라기보다 마치 검정 먹을 뿌려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궁금한 나머지 작품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았다. 캔버스 천은 아교로 바탕칠 된 것이 아니라 날 것의 아사천이 아닌가. 그리고 아사천에 표현된 검정 흔적들은 먹물이 아니라 유화물감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짓>이라고 명명했다. 짓? 무슨 짓? 도대체 정주희의 <짓>은 어떻게 제작된 것일까? 문득 작품 뒷면이 궁금해졌다. 작품 뒤로 가보니 아교로 바탕칠 된 것이 아닌가.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면이 아니라 그림의 뒷면에 작품을 한 것인 셈이다. 와이? 왜 정주희는 캔버스 뒷면에 작업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작품 뒤에서 두리번거리다가 백색 벽면에 검정 물감이 떡칠 된 부분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구름다리에 캔버스 천을 널어놓고 물감을 천에 던지기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요? 백색 벽면에 떡칠된 검정 흔적이 다름아닌 유화물감이고, 그려진 것이 아니라 물감을 던져서 만들어진 흔적이라고 말이다. 덧붙여 백색 벽면에 여기저기에 물감이 튄 흔적들이 있다. 

필자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거대한 전시실을 나가려고 하는데 전시장 일부를 거대한 백색의 파티션으로 막아놓은 것을 발견했다. 도대체 이 파티션은 무엇일까? 굳이 파티션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 전시장 한 켠을 파티션으로 막은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궁금한 나머지 파티션 뒤로 들어가 보았다. 오잉? 거대한 백색 벽면에 영상작품이 상영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주희의 <읽기연습6>이다. 영상작품 <읽기연습6>은 투-채널(two-channel)로 이루어져 있었다. 왼쪽 영상은 무엇인가를 반복해서 던지는 행위를 보여주는 반면, 오른쪽 영상은 두 발을 고정시키고 있는 바닥에 흰 티슈들이 매번 쌓이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정주희의 <읽기연습6>은 작가가 티슈를 끊임없이 던지는 행위를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화면 정면을 바라보고 티슈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티슈를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작가가 던진 티슈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자신의 발밑에 떨어져 쌓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는 흰 티슈를 멀리 던지고자 하지만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티슈는 멀리 날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당 필자, 정주희의 <읽기연습6>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그녀의 영상은 ‘나는 아무 힘도 없고 바위에 계란 치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주희는 관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득권과의 싸움이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할지라도 난 바위를 향해 쉼 없이 계란을 던질 것이다.” 정주희의 기득권에 대한 저항은 크리넥스 티슈 1통에 들어있는 200여장의 티슈를 모두 던지는 것으로 끝난다. 

자, 원점으로 돌아가자. 원점? 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말이다. 말하자면 날 것의 아사천에 표현된 검정 흔적들 그리고 그림 뒷면 백색 벽면에 떡칠 된 검정 흔적 또한 백색 벽면 이곳저곳에 물감이 튄 흔적들의 정체 말이다. 

정주희는 티슈 1통에 들어있는 200여장의 티슈를 던졌다. 200여장의 티슈는 그녀의 발 주변 바닥에 쌓였다. 그녀는 그 200여장의 티슈에 검정 유화물감 덩어리를 싸서 구름다리에 빨래처럼 늘어트린 아사천에 던졌다고 말이다. 따라서 8미터에 달하는 아사천에 정주희는 또 다시 200여회에 달하는 물감은 담은 티슈 던지기 행위를 반복한 셈이다. 

이제 거대한 아시천에 생긴 검정 흔적의 출처를 아시겠죠? 그리고 백색 벽면 여기저기에 물감이 튄 흔적들은 바로 던지기 행위로 인해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림 뒤의 벽면에 떡칠이 된 검정물감의 흔적은 정주희가 검정 유화물감을 티슈에 싸서 던진 것 중에 하나가 그림 위로 넘어가 그림 뒤의 백색 벽면에 부딪혀서 만들어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주희의 <읽기연습6>은 ‘바위에 계란치기’로만 그치지 않잖은가? 왜냐하면 그녀의 <짓>은 ‘캔버스에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녀의 <읽기연습 6>은 단지 허망한 저항이라고 단정내릴 수 없잖은가? 

왜 정주희가 개인전 전시타이틀을 <아름다운-끔찍한(beautiful-awful)>으로 작명했는지 감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관객이 2015년부터 시작한 정주희의 ‘읽기연습(Reading practice)’ 시리즈를 모조리 조회해 본다면, 그녀의 작품세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정주희의 작품들은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녀의 작품들은 담백하지만 밀도감 있게 표현되어 있어 필자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필자는 정주희의 작품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품들은 깊은 상처를 받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당시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전율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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