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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ked age 5(옆집 아저씨)

Packed age 5(옆집 아저씨) , 2015 , objet on canvas , 145 x 112 cm


업실에 지나갈 때 마다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멋있는 차림에 피 묻은 장갑을 끼고  
빨간 앞치마를 멘 채 도축을 하는 사장님을 몇 년 동안 봐 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질감을 느꼈다.
개인의 물건들은 개인의 취향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계급을 말해준다. 
칼과 앞치마는 아저씨가 20년동안 사용한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과거에는 백정을 상놈이라는 천한 신분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구찌 허리띠를 메고 페레가모 구두를 신는다. 현대판 명품 백정이다.
 나는 여기서  ‘명품’를강조한다. 
사실 여기엔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천한 신분일 수록 그것을 벗어나려고 하고, 
벗어난 것처럼 보일 수록 충격적인 원점의 진실이 더욱 드러난다는 역설.
지젝은 어디선가 에일리언의 변신술을 가지고 그런 실재계의 개념을 설명한 적이 있다. 
에일리언이 아무리 인간으로 변신을 잘 했다곤 하더라도, 
촉수 한 두 개 정도는 절대로 감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소위 ‘언캐니’라는것을느낀다. 
나는 아마 옆집 아저씨의 앞치마에서 에일리언의 그런 촉수를 느낀 것이 아닐까.
<Packed age5>의 오브제들은 정육점 아저씨가 구찌 등 명품의 소비를 통해 감추고 싶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계 등의 이유로) 신체 자체가어버린 사물이다. 
우리는 그걸 보면서 불편하게 느끼는 건 사실이다. 정육점 같은 경우도 사실, 
도축이라는 행위를 개인의 생활사에서 아웃소싱해버린 시스템이 아닌가? 
보고 싶지 않은 거다. 분열증적 개인-대중이랄
소비를 통해 대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싶지 않은 개인과, 
그 소비를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 부정적인 어떤 요소.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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