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의 다른 방법: 우리를 바라보는 자세》
글 현오아
두 명의 굴뚝청소부가 청소를 끝내고 밖으로 나온다. 한 명은 그을음이 묻어 얼굴이 더러운데, 나머지 한 명은 이상 하게도 깨끗했다. 누가 얼굴을 씻었을까? 모두 얼굴이 까매진 사람이 세수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정작 얼굴을 은 사람은 얼굴이 깨끗한 청소부였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 또한 더러워졌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탈무드의‘굴뚝청소부 일화’는 우리는 결코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직접적으로 볼 수 없고 거울이나 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정주희의<Perspective Mirror and Glass>(2016)는 탈무드의 이 유명한 이야기 를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듯하다. 이 작품은 직사각형의 거울과 유리가 한 쌍을 이 루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울과 유리 표면에 흰색 점이0.5센티미터의 간격으 로 그리드를 이루며 빽빽하게 찍혀 있다. 작가에 따르면 유리는 외부(사회)를 바 라보는 창을, 거울은 내부(자신)를 바라보는 창을 의미한다. 실제로 거울에 비친 내 모습과 유리 너머 혹은 반사되어 보이는 타인의 모습을 매개로, 작품 앞에 선 나는 외부와 내부를 끊임없이 번갈아보게 된다. 그러나더 자세히 보기 위해 점 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빼곡히 들어선점으로 인해 거울에 비친 상은 온전한 형태 로 포착되지 못하고 작은 그리드로 픽셀화 되어 부유한다. 우리는 절대 혼자서는 전체의 나를 파악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Perspective Mirror and Glass>, ink on mirror and glass, 38.4x67.4cm, 2016>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정주희의‘Perspective’ 시리즈 신작은 앞서 언급한<Perspective Mirror and Glass>(20 16)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발전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정주희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 특히 구조화된 사회시스템 하에 살아가는 개인의 삶과 태도에 집중하여 회화와 영상으로 작업해 오고 있는데, 2015년 본인 사진 위에‘그리드’ 형태의 점을 찍는 작업을 계기로‘Perspective’ 시리즈에 집중해왔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9점의 신작은 모두 흑백 모노크롬 회화로 구성되어 있다.
정주희가 모노크롬 회화를 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로 구상 회화를 작업했던 작가가 양식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다. 작가는 지금까지 대부분 자전적 경험을 녹여내어 일상적이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들을 화폭에 담아왔다.
예를 들어, 말린 꽃, 과일 껍질 등을 넣어 만든 방향제‘포푸리’를 크게 확대하여 그린<포푸리(Potppuri)>(2012) 시리 즈의 경우, 특정 공정을 거치면서 인위적인 향과 색이 덧입혀진 내용물은 사회시스템에 길들여져 규격화되고 개성을 잃어가는 개인과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를 은유적으로
< Potppuri-잡다한혼합물3>, oil on can anvas, 125x125cm, 2009 <Packed Age 3>, oil on canvas, 60x 60cm, 2013 <읽기연습1> ,단채널 영상, 4’ 28”,
나타낸다. 여행가방에 뒤엉켜 있는 소지품을 그려낸<Packed Age>(2015)에서는 개인의 소유물을 통해 취향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유일한 영상작업인<읽기 연습>(2015~) 시리즈 또한 작가가 직접 출연하여 텍스트를 읽어 나간다. 텍스트의 내용은 여성, 작가, 아내,딸 로서 겪었던 본인의 경험, 하고 싶었지만 내뱉지 못했던 속마음, 뉴스에서 나온 흥미로운 사건들로, 한 인간이 사회에 서 검열을 거치지 않고 공적인 발화가 얼마나 힘든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드 역시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작가에 따르면 뉴스를 스크랩한 콜라 주를 그린<Lonely Crowd>(2013)가 그리드를 처음 시도하게 된 직접적인 계 기가 되었다. 넓은 판에 콜라주 되어 있는, 사각형으로 잘린 신문의 가로 세로 모서리가 겹쳐져 있는 모습을 보다 보니 그리드 형태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신문 속 항상 등장하는 개인과사회의 관계가 선과 선이 만나 겹쳐지고 또다시 이어지고 확장되는 그리드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정주희의 작업 양식은 시간 의 흐름에 따라 달라져왔긴 하지만 항상 그의 작업 중심에는‘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주제가 놓여 있으며 그리드 작업 또한 이 주제를천착해 오며 발전 시켜 만들어낸 산물이다.
<Lonely Crowd 1>, oil on canvas, 130x193 cm, 2013
‘Perspective’ 신작은 언뜻 보면 여느 모노크롬 회화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빽빽하게 찍힌 작은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붓으로 찍힌 점이라기보다 짤 주머니로 극소량의 물감을 캔버스 위에 살포시 짜 놓은 덩어리에 가깝다.
가로 세로 1센티미터 혹은 그보다 더 촘촘하게 정사각형 그리드를 이루며 줄지어 있는 점들은 강박적이기까지 하다. 재료에 따 라 점의 모양과 형태 또한 조금씩 다르다. 유화 물감보다 묽은 아크릴 물감의 경우, 중력에 의해 물감이 흘러내려 점의 크기가 들쭉날쭉하며 간격과 수평도 흐트러져 있다.
작품에 흥미를 더해주는 것은 조명이다. 유광 물감을 사용했기 때문에 관람자가 이 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볼록한 점들은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며, 보는 관점에 따라 그 모양도 달리 보인다.이쯤 되면 작업 과정 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주사기에 흰색 물감을 주입한 후, 밀대로 밀어내어 조심스레 한 점 한 점 찍는다. 밑그림 없이 진행하는 탓에 최대한 긴장한 상태에서 호흡을 고르고, 평균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간격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점을 다 찍고 나면 큰 붓으로 캔버스 표면을 휩쓸듯이 검은색으로 흰색을 모두 덮는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 과정이 “획일화된 사회시 스템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그 체제 내에서 안주하고 싶은 양가적인 개인의 마음이다. 동시에 검은색이 흰색이 뒤덮듯이 시스 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점을 반복해서 찍는 행위 또한 이 양가적인 욕망을 해소하 기 위함이자 세상 속에서 점처럼 존재하는 나 자신의 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가로 세로 1센티미터 혹은 그보다 더 촘촘하게 정사각형 그리드를 이루며 줄지어 있는 점들은 강박적이기까지 하다. 재료에 따 라 점의 모양과 형태 또한 조금씩 다르다. 유화 물감보다 묽은 아크릴 물감의 경우, 중력에 의해 물감이 흘러내려 점의 크기가 들쭉날쭉하며 간격과 수평도 흐트러져 있다.
작품에 흥미를 더해주는 것은 조명이다. 유광 물감을 사용했기 때문에 관람자가 이 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볼록한 점들은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며, 보는 관점에 따라 그 모양도 달리 보인다.이쯤 되면 작업 과정 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주사기에 흰색 물감을 주입한 후, 밀대로 밀어내어 조심스레 한 점 한 점 찍는다. 밑그림 없이 진행하는 탓에 최대한 긴장한 상태에서 호흡을 고르고, 평균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간격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점을 다 찍고 나면 큰 붓으로 캔버스 표면을 휩쓸듯이 검은색으로 흰색을 모두 덮는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 과정이 “획일화된 사회시 스템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그 체제 내에서 안주하고 싶은 양가적인 개인의 마음이다. 동시에 검은색이 흰색이 뒤덮듯이 시스 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점을 반복해서 찍는 행위 또한 이 양가적인 욕망을 해소하 기 위함이자 세상 속에서 점처럼 존재하는 나 자신의 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종횡으로 줄 세워진 점들은 이미 구획된 사회구조 속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게임의 법칙을 따라야만 하는 개인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개인은 왜 이 상품을 선택하고 소비하게 되는가? (나는 왜 아이폰과 갤럭시 사이에서만 고민하는가?)
소비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숨만 쉬는데도 돈이 든다),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모습.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 같은 우리의 삶. 정주희는 주사기가 만들어내는 점에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이입하여 개인적인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 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하고자 한다.
소비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숨만 쉬는데도 돈이 든다),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모습.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 같은 우리의 삶. 정주희는 주사기가 만들어내는 점에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이입하여 개인적인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 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하고자 한다.
“주사기로 점을 찍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물감이 터져 나오거나, 컨트롤이 안 될 때가 있다.
좁은 입구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참다가 터지는 물감을 볼 때면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미 정해져 있는 판을 깰 수 있는 순간 이 한 번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점들이 반짝거리는 찰나가 있듯이.”(작가와의 인터뷰 중)
우리는 모두 굴뚝청소부이다. 거울이나 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 자신을 파악할 수 있듯이, 주어진 환경과 내가 속한 사회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나를 온전히 바라볼 수 없다. 정주희는 자신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 세계를 매개로, 오히려 자 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시스템 속에서 획일화되고 규격화 되어가는 자신을 반추하면서 개인이 놓인 불가항력적 인 상황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점을 반복해서 찍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을 듣자니 문득2차원 의 평면이 아닌 시공간에 펼쳐져 있는 종횡의 선들을 오가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우리 존재들을 상상하게 된다. 찰나에 반짝 거리는 캔버스의 점처럼, 우리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시스템 속에서 획일화되고 규격화 되어가는 자신을 반추하면서 개인이 놓인 불가항력적 인 상황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점을 반복해서 찍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을 듣자니 문득2차원 의 평면이 아닌 시공간에 펼쳐져 있는 종횡의 선들을 오가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우리 존재들을 상상하게 된다. 찰나에 반짝 거리는 캔버스의 점처럼, 우리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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