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의 굴레에서 존재를 연습하는 법
나체의 젊은 여성이 양손으로 종이를 들고 쓰인 글을 읽어내려 간다. 아무런 예고 없이 회초리가 종아리를 내려친다. 종아리에는 회초리 자국이 부어 올라 멍이 든다. 등장 인물은 회초리가 내려칠 때의 찰나의 비명을 뒤로 하고 읽기를 이어나간다.또 다른 영상에서는 동일한 여성이 머리 위에 책을 쌓아 올린 채 글을 읽고 있다. 책들이 쏟아져 떨어지면 이를 다시 주워 올려 머리에 쌓고 글을 읽는 것을 반복한다. 정주희의<읽기 연습>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작가는 주로 뉴스 이미지를 선별해 콜라주하거나, 포푸리 혹은 여행을 가기 위해 싼 짐을 화면에 확대해 꽉 채우는 등의 구상회화를 해왔으나, 2015년 이후<읽기 연습>시리즈를 통해 처음으로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개인들이 접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을 때는 그 대상이 되는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회화를 선택했지만, 이러한 설명적 이미지 없이, 작가 본인이 경험한 사회와 그것이 어떻게 개인에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매체로는 영상을 택한 것이다.
따라서 기존 회화 작업에 비해 본 영상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화면에 등장하는 요소나 배경 등의 시각적 도상이 많이 제거된 채 제시된다. 이는 등장하는 음성의 떨림과 같은 인물의 심리상태나 감정 혹은 행위 자체에 더욱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는데, 이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인물이 읽고 있는 텍스트일 것이다(작품의 제목에 직접 연관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읽기라는 발화 행위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텍스트들은 직관적인 사고나 생각과는 다르다. 손해를 계산하지 않고, 아무런 검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말을 내뱉는다는 것이 사회에서 관계망을 맺으며 사는 인간의 입장에서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생각이 본 시리즈의 근간이 되었다. <읽기연습1>에서 머리에 책을 얹고 읽는 것은 작가가 어떠한 교정 없이 직관적으로 직접 써내려 간 텍스트로, 내면의 중얼거림을 배설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회초리를 맞는<읽기연습2>의 텍스트는 사고 진술서와 은퇴서, 신문 기사에서 흥미롭다 생각되는 부분들을 발췌해 무작위로 섞었다. 때문에 관객은 순간순간 단어들을 인지할 수는 있으나, 이를 통한 전체적인 맥락의 파악은 불가능하다. 이 텍스트들은 각각 사적 발화와 공적 발화를 위한 것이라는 차이점은 있지만, 사회에서 관계 맺기 위한 도구인 동시에 발화하는 화자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끔 작용하는, 즉 한 개인을 정의하는 수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반면 등장 인물의 행위는 일상적 폭력에 대한 증언이며 등장하는 도구들은 이에 대한 가시적 메타포이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작가 자신이다. 개인의 특정한 요구와 취향을 반영해 선택되는 공적/사회적 기호로써 신체를 감싸는 의복을 포기한 작가의 노출은 관념적 규정과 이데올로기로 왜곡되기 이전의 존재의 출발점으로서 관계 내에서 고립된 원자적 개인을 나타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결정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율성을 가진 고립된 개인은 사회에서 존재할 수 없다. 타인과의 관계 내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규범을 학습하는 사회화가 언제나 동반된다. 예를 들어<읽기연습 1>에서 머리에 얹고 있는 책들은 소유하고 있는 인물의 취향을 규정하는 동시에, 사회라는 집단에 속하기 위한 끊임없는 학습의 과정을 가시화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회초리 역시 규범을 벗어난 개인의 책임을 묻는 대표적 처벌 도구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익숙한 소재일 것이다. 작가는 회초리질의 간격을10초로 일정하게 정해놓았는데, 이는 규범이나 억압의 구조가 특정 상황에서만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언제나 규칙적으로 모두에게 작용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만 유의할 것은, 이것이 이러한 억압적인 사회구조를 전복하거나 개인적으로 해소하고자 시작된 작업이라기보다는, 작가 본인의 시각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사회의 ‘굴레’를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읽기 연습>에서 머리에 굳이 책을 올린 상태를 유지한다거나 남이 때리는 회초리를 맞는 상황 등은 결코 틀리게 읽은 것에 대한 처벌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의 정도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의식조차 하기 어려운 일상의 폭력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충분히 피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피하지 않고 그 억압의 굴레에 속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양가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등장 인물이 지속적인 억압이 반복되어 고통스러운 와중에서도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 자체를 연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읽기 연습>시리즈와 더불어 최근에 작가는 거울 혹은 유리의 면에 세필로 균일한 사이즈의 흰색 점을 반복적으로 찍어 그리드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억압에서 탈피하고 싶으면서도 굳이 행과 열을 맞추어 가며 일정하게 점을 찍고자 집중하는 행위는 앞서 언급한 양가적 습성을 공유하는 동시에, 너무나 당연하게도,거울과 유리에 반사되는 스스로를 마주하고자 하는 집요함의 표출이기도 하다. 이는 반복되는 억압의 굴레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함이다. 작가가 대하는 삶의 인식은 점들이 모여 이루어낸 그리드의 시각적 질서로 향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면화되고, 이는 같은 면을 마주하고 본인의 얼굴을 비추어 보게 될 관객에게 전달된다. <읽기 연습>이나 거울 작업과 같이 이러한 집요한 과정들은 그것을 기록한 영상이나 평면 작업의 형식으로 결과물이 제시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이는 개인이 사회적 삶에서 스스로 결론지을 수조차 없이 지속적으로 진행해야만 하는 수행적 퍼포먼스로 선행하는 것이다.
임다운(디렉터, 기고자KIGOJA)
Alba Dawoon Lim (Director, KIGOJA: Independent Arts Space Initiative)
댓글
댓글 쓰기